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해태 타이거즈 (문단 편집) == 출신 현역 선수 == 해태 타이거즈 유니폼을 단 하루라도 입었던 선수 중에서 여전히 현역 선수 생활을 하고 있는 선수는[* 2002년 신인지명에서 해태의 1차 지명으로 선택된 [[김진우(1983)|김진우]]도 지명 당시 해태 유니폼을 입어본 적 있으나 애초에 팀이 [[기아자동차]]에 인수되는 게 확정된 상황에서 지명받았기 때문에 제외. 그리고 애초에 해태 유니폼을 입고 한 경기도 뛰어보지도 않았다.] 2017 시즌 당시 [[임창용]], [[이호준]], [[김경언]], [[정성훈]], [[강영식]] 5명이 남았지만 2017 시즌 종료 후 임창용과 정성훈을 제외하고 전부 은퇴하거나 방출됐다. 2016년 삼성에서 방출된 임창용이 [[KIA 타이거즈]]에 입단했고, 2018년 LG에서 방출된 정성훈이 다시 고향 팀 [[KIA 타이거즈]]에 입단하며 KIA는 마지막으로 남은 해태 출신 투-타 선수들을 모두 보유한 팀이 되었다. 둘 모두 빼어난 실력을 가지고서도 원치 않은 트레이드 대상이 되어[* [[임창용]]은 1998년 말 IMF 사태로 인해 자금난에 시달리던 해태가 현금 확보를 위해 마침 당시 전력 보강에 열심이던 삼성이 '''[[양준혁]]+현금 20억'''을 해태에 내주는 조건으로 해태를 떠나 삼성으로 건너갔고, [[정성훈]]은 2003년 초 KIA가 내야진 교통정리 겸 타선 보강을 위해 [[박재홍(야구)|박재홍]]의 반대급부로 현대로 트레이드된다. 이후 임창용은 삼성을 거쳐 일본, 메이저리그까지 찍고 온 뒤 [[삼성 라이온즈 원정 도박 논란]]에 연루되어 징계 차원에서 방출, 은퇴 위기까지 몰렸다가 KIA가 그를 영입했고, [[정성훈]]은 현대에서 주가를 올리며 후에 LG와 FA 대박도 두 차례나 이뤄내는 등 꾸준하게 활약하다가 2017 시즌 후 LG에서 방출된 뒤 KIA가 받아줬다.] 오랫동안 돌고 돌아 다시 고향 팀으로 돌아왔다는 공통점이 있다. 2018 시즌 종료 후, 정성훈이 KIA의 코치직을 받아들이며 현역에서 은퇴했고, 임창용은 KIA에서 방출된 뒤 새 팀을 찾지 못하고 은퇴함으로써 '''해태 타이거즈 유니폼을 입은 현역 선수는 전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2020년 현재 해태 타이거즈를 1군 경기에서 상대해본 선수로 범위를 넓혀도 김주찬, 김태균 단 둘뿐이며[* 이대호, 이성우, 김강민, 권오준은 프로 입단은 해태가 생존하던 시절에 했으나 1군에 올라온 건 해태가 KIA로 바뀐 후였다.], 당연히도 그들은 모두 고졸이고 대졸 선수 중 해태 타이거즈를 상대해본 최후의 생존 선수는 [[박한이]].[* 여담으로 박한이는 2001년 7월 29일 해태 타이거즈의 마지막 광주 홈경기에서 해태를 상대로 홈런을 치기도 했다.] 이제는 해태 타이거즈가 사라진 후 태어난 선수들이 프로에 입단하는 시절까지 와버렸다. 당장 타이거즈 역사상 두 번째 신인왕인 [[이의리]]가 해태가 사라진 후인 2002년에 태어났다. 그리고 2021년을 기준으로 김태균과 박한이, 김주찬도 모두 은퇴하면서 해태 타이거즈를 1군 무대에서 상대해본 선수들마저도 프로 무대에 남지 않게 되었고 해태 타이거즈를 2군에서나마 상대해봤거나 최소한 해태가 생존해 있을 때 현역이었던 선수도 이대호, 김강민 이렇게 둘밖에 남지 않았다. 하지만 2022 시즌을 끝으로 이대호도 은퇴하며 김강민 한 명밖에 남지 않게 되었다. 해태 타이거즈가 치른 마지막 한국시리즈이자 우승 시즌인 [[1997년 한국시리즈]]를 경험한 현역 선수는 '''[[임창용]]과 [[이호준]]이 유이했으나''' [[이호준]]이 2017 시즌을 끝으로 그라운드를 떠나고 2018 시즌이 끝나고 임창용이 KIA에서 방출된 후 결국 은퇴하게 되면서 해태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한 현역 선수는 이제 없어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